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루마다 마사미 (문단 편집) == 커리어 == 데뷔는 1974년 [[소년 점프]]에 투고한 스케반 아라시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3년 후인 1977년 '링에 걸어라'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본인은 막나가던 시절의 만화라고 했지만 이 것이 의외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1982년 풍마의 코지로, 1986년 세인트 세이야가 잇따라서 히트하여 만화가로써의 지명도는 절정에 달했다. 당대 집영사(슈에이사)빌딩 리모델링 때는 이 건물이 쿠루마다 빌딩, 링에 걸어라 빌딩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기에는 문화인 세금 납세자 1위에 오른 적도 있었으며 외제차도 여러 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세인트 세이야]]의 인기는 엄청난 것이여서 쿠루마다 본인도 점프 300만부 시대는 본인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자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세인트 세이야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작품이었는데 오늘날 일본 여성향 동인계에 상당한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요즘 세인트 세이야 팬들을 보면 파칭코를 즐기는 아저씨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팬들이 여성들이다.] 현재 에피소드 G라던가 로스트 캔버스 등 세인트세이야 외전 작의 작가들도 세인트 세이야의 동인지를 그리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작중에 등장하는 크로스 성의 피규어의 완구화 역시 대성공을 거두어서 1987년 최고의 어린이용 완구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애니메이션은 애니대로 전설이 되었다. 서구권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소년만화로써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 만화가 중에서는 몇 안되게 서양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만화가 중 하나. 후일 영화 [[타이탄의 멸망]]의 감독 루이 르테리에 역시 작품을 만드는데 세인트 세이야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으며, 감독에게 정식으로 요청받은 쿠루마다가 타이탄의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하여간 [[세인트 세이야]]의 전설적인 흥행은 항목 참조. 그러나 출판사와 불화로 이후 연재작들이 강제종영 당하기도 하는 등 슬럼프를 맞기도 했는대 이 암흑기 때 쿠루마다는 [[소드마스터 야마토]]는 가볍게 발라버릴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연출의 결말을 많이 선보였다. 대표적으로는 스토리를 정리하지 않고 '네버 엔드'라고 덜렁 써버리고 끝내버리는 결말. [[오토코자카]]에선 대놓고 '''미완'''이라고 한자로 대문짝 만하게 박아버리고 연재를 끝내기도 했다. 정확히는 '''기념할 만한 첫 조기종료작'''. 정말 본인이 저 말을 했다...아예 "자신이 직업을 가진 것은 감사하지만, 자신이 정말 만화가로 향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코멘트할 정도였다고. 94년 비트 엑스(B't X)로 컴백. 그 후로는 세인트 세이야 넥스트 디멘션을 부정기 연재하고 있다. 2016년 연재작은 2월의 오토코자카 광기의 쿄스케 편과 뇌명의 ZAJI 아득한 저편을 연재 겨울에는 세인트 세이야 NEXT DIMENSION 명왕신화를 연재할 예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